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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2/왜 아직도 너를 좋아하는가

1. 너의 서사

왜 아직도 나는 너를 좋아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찰 시리즈

내가 얘를 아직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얘가 만들어낸 서사 때문이다.
얘 인생을 길게 글로 늘여놨다가 얘가 너무 불쌍해서 울었던 적이 있었다. 남이 판단할 일은 아니지만 얘의 인생이 결코 평탄치만은 않았다. 그걸 잘 견디고 못 견디고의 일이 아니었다. 거기까지 견딘 것만 해도 잘했어, 그런 말을 해주고 싶을 정도로 너는 자꾸 무너질 일들이 생겨났지.

그렇다고 해서 박유가 모든 우울의 근원이자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놈은 아니었다는 거다. 중요한 건 해맑게 발 동동거리면서 웃다가도 밤에는 달을 보면서 우는 애였다는 거다. 그 원인은 많겠지만 모든 불행서사로 똘똘 뭉쳐진 애가 아니었지.

내가 저번에도 말했지만 남들은 그냥 툭툭 털고 일어나서 다시 갈 수 있는 일임에도 얘는 한참이고 주저앉아서 울어야만 간신히 몸을 일으킬 수 있는 애였다. 여려서 손을 뻗으면서 나를 제발 살려달라고 우는 애는 아니었지만 가까이 보아야만 보이는 어둠과 우울이 뭉쳐져서 이 아이 옆에 굴러다니는데 스스로 그걸 치울 생각은 없다. 왜냐면 그 우울과 어둠조차 얘는 너무 소중했거든. 자기가 겪었던 일들이고, 자기에게 소중한 사람들이고. 그래서 가질 수도 버릴 수도 없는 마음들이 커져서 애를 자꾸 울렸다. 중요한 건 절대 여린 애는 아니었다는 거다. 그 어둠만 잠시 비켜둘 수 있다면 상대가 누구든지 먼저 손을 뻗고 안아주고 이끌어 줄 수 있는 아량도 분명히 있었던 놈이었다.

박유천은 스스로 절대 그 나락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애였다. 주위에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너를 불행하게 만든다고 할지라도 얘는 그걸 다 끌어안고 있을 애였으니까. 그러니까 얘는 주변 사람들이 되게 중요했다. 스스로 자기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순간 얘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준다. 얘는 자기 바운더리 안에 들어가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전혀 상관없다. 간이고 쓸개고 다 내어주는 전형적인 호구상. 진짜 없는 간까지 만들어서 내어주는 놈이었다.. 그런데 그 바운더리 안에 들어가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더라.
그러니까 이 놈 친구 없는 거 아냐.. 얘는 오로지 가족, 멤버뿐이었다. 얘가 얼마나 헌신적이냐면, 지 사람이다 싶으면 문신을 새겨야 하는 습관이 있는 것 같기도 함(할많하않) 암튼 무슨 구원의 증표처럼 새겨진 박유 몸에 몇 안 되는 이름들을 생각하면.. 또 정병이 오지만 그게 또 얘가 가진 가치관인 것도 맞았다. 자기에게 소중한 사람에게 모든 걸 다 내어주자. 그 이외의 세상은 필요없었다. 그러니까 그렇게 망나니가 되어서 물불 안 가리고 뛰어다니기도 했던 거지 뭐.. 애초에 그 외의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쓰지도 않는 쿨하고 매정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박유천을 세상으로 나오게 하는 존재는 무조건 얘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가족과 멤버 그리고 연인들. 박유천은 상대를 만나야만 "구원"이 가능했다. 그 구원은 스스로가 찾아 헤매고 다녔던 구원은 아니었다. 얘는 왜 나만 이렇게 불행할까? 하면서 자격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애도 아니니까. 얘는 남들도 다 그정도는 견디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까 여전히 행복을 말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하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불행 앞에서 얘는 또 다시 행복해질 수 있는 수많은 기회들을 놓치지 않는다. 나는 그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사고회로를 좋아한다.
그렇지만 평범한 삶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살아가는 애라는 거다. 남들이 행복한 것을 보면서 삐딱한 마음을 갖는 게 아니라 저런 사람들한테도 분명히 자신과 같은 어둠이 있을 거고 그것 때문에 자주 울 것이며 자기처럼 견디면서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안타깝게 바라볼 것이라는 거다. 얘 천성은 어쩔 수 없이 착하다. 남 탓 하면 편할 것을 남탓조차 하지 않고 혼자 그냥 끌어 안고 엉엉거리고.. 그런 이샛기 불쌍해서 같이 끌어안고 엉엉거리게 된단 말이지.

얘의 이런 성격은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얘가 불쌍하고 마음이 아파서가 아니라. 그런 것들을 뒤로 하고도 자기에게 소중한 것들에게 품을 언제든 내어주는 그런 희생과 쉽게 겪을 수 없는 불행을 뒤로 두고도 티없이 맑게 웃을 줄 아는 애였으니까.

그러니까 얘 인생이 불쌍하고, 얘가 이렇게 된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간다는 말을, 머글이 하면 듣기가 싫은 거다.
얘가 거기에 갇혀서 사는 애는 아니잖아. 그런 것들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나서 거기서도 우리는 행복을 찾자, 행복하자. 그리고 나는 행복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나서 그게 좋았던 거다.

가끔은 스스로 혼자서 슬퍼지기도 하고 울기도 했겠지만. 그래서 울 곳을 찾아 헤매곤 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그냥 다양한 면 중 하나였고 나중에는 그걸 스스로 깨부수고 나와서 오히려 사람들 앞에서는 과하게 웃어보이기까지 했었다.

가장 슬프게 울다가도 가장 행복하게 웃을 줄 아는 너를 어떻게 미워하겠니.
그러니까 이런 얘의 서사는 어디서도 본 적이 없었고 다시는 볼 수 없는 정말 유일무이한 존재란 말이야.

이게 내가 아직도 널 좋아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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